이어령의 마지막 수업
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는 동안, 이어령은 내 머릿 속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큰 울림을 주었다.
요즘 미디어나 책에서 전문가들이 특정분야에 대한 지식, 트렌드, 요령을 가르쳐 주는 이야기는 많았지만,
삶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들어본지 오래 되어 늘 무엇인가 풀리지 않는 고민을 계속 가지고 사는 기분이었다.
이 책을 읽음으로써 풀리지 않았던 고민의 몇 조각들이 풀리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.
오늘 먹을 점심조차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남의 생각과 의견에 의존하는 스스로가 안타까웠고,나 답게 사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하던터에 만난 단비였다.치열한 이야기 외에도 이어령이 세상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시선도 느낄 수 있었다.더불어 각박하게 세상을 바라보기만 했던 스스로에게 미안함도 느껴졌다.
"나는 이제부터 자네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네.
이 모든 것은 내가 죽음과 죽기 살기로 팔씨름을 하며 깨달은 것들이야. 이해하겠나?
어둠의 팔뚝을 넘어뜨리고 받은 전리품 같은 것이지."
빛이 되다 만 물질의 찌거기가 있을 것 아닌가. 그게 바로 우리야
엄마 없다? 엄마 있네! 어찌 보면 그게 우리 인생의 전부라네.
모든 현대인은 중세와 근세의 역사적 수레바퀴가 지나간 벌판의 한복판에 고아처럼 떨어져 있는거야.
여기서 한 발짝 한 발짝 걸으면서 생각해야 해.
우리가 이 문명사회에서 그냥 떠밀려갈 것인지,
아니면 힘들어도 역류하면서 가고자 하는 물줄기를 찾을 것인지...... 고민해야 한다네.
끝까지 이기적일 것 같은 사람도 타인을 위해 파 뿌리 하나 정도는 나눠준다네.
그 정도의 양심은 꺼지지 않는 존재가 인간이거든.
가장 부유한 삶은 이야기가 있는 삶이라네. '스토리텔링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'가 그 사람의 럭셔리지.
아흔아홉 마리 양은 제자리에서 풀이나 뜯어 먹었지. 그런데 호기심 많은 한 놈은 늑대가 오나 안 오나 살피고, 저 멀리 낯선 꽃향기도 맡으면서 지 멋대로 놀다가 길 잃은 거잖아. 저 홀로 낯선 세상과 대면하는 놈이야. 탁월한 놈이지.
떼로 몰려다니는 것들, 그 아흔아홉 마리는 제 눈앞의 풀만 뜨엇지. 목자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닌 거야. 존재했어?
'너 존재했어?'
'너답게 세상세 존재했어?'
'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했어?'
프로세스! 집이 아니라 길 자체를 목적으로 삼게나. 나는 멈추지 않았네.
집에 정주하지 않고 끝없이 방황하고 떠돌아다녔어. 꿈이라고 하는 것은 꿈 자체에 있는 거라네.
역설적이지만, 꿈이 이루어지면 꿈에서 깨어나는 일밖에는 남지 않아.
그래서 돈키호테는 미쳐서 살았고 깨어나서 죽었다고 하잖나.
상식적인 사고로는 이해가 안 되는 헛소리일 수도 있다. 하하.
"남의 신념대로 살지 마라
방황하라.
길 잃은 양이 돼라."
창조는 카오스에서 생겨. 질서에서는 안 생기지. 질서는 이미 죽은 거라네.
궁극적으로 인간은 타인에 의해 바뀔 수 없다네.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만족할 수밖에 없어. 그게 자족이지.
자족에 이르는 길이 자기다움이야.
세상이 복잡해 보여도 피, 언어, 돈 이 세 가지가 교환 기축을 이루며 돌아가고 있어
리더는 사잇꾼, 너와 나의 목을 잇는 사람들